나오기만 하면 살건데 이 게임 왜 안나와?

게임, 특히 온라인 게임, HTTP 리퀘스트 날려서 점수 세이브 하는 게임 말고, 소켓 통신하는 고전적인 의미의 온라인 게임, 그중에서도 수백 수천명 이상이 한 게임 공간에 접속하는 온라인 게임-mmorpg의 개발은 어렵다.

어렵다

내가 다녔던 모 회사의 경우 1년 반만에 게임을 찍어낸 경우도 있었지만 이미 만들어진 네트워크 라이브러리,게임엔진,서버와 클라이언트의 통신체계,맵툴,DB구조 다 있었고 그저 스킨과 숫자를 바꿨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1년 반이나 걸렸고 사람들은 꽤 고생했고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일반인들이야 그럴싸한 설정샷이나 혹하는 캐릭터 애니메이션 몇 개 보여주면 곧 게임 나올것으로 알고-뭐 투자자나 경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있지만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작업이 우주에 깔린 암흑물질만큼이나 많다.

모든 구조물이 박스나 선으로 렌더링 되고 지형 렌더링 되고 온라인으로 여러 플레이어가 상호작용이 되는 정도의 기술 기반을 갖춰놨다면 앞으로의 여정은 거의 시간 싸움이다. 이 정도면 매우 훌륭하다. 시간만 들이면 이제 그럴싸하게 게임으로 보이게 될 것이다. 근데 여기까지 오는데 정말 억만광년의 세월이 걸린다.

내가 이걸 확실하게 말할수 있는건 이 부분-그래픽엔진,네트워크라이브러리,서버-클라이언트 동기화,클라이언트/서버에서의 충돌처리,기본적인 전투판정,이벤트 처리,맵툴,패키징,배포 등등을 모두 다 해본 사람은 드물고, 난 다 해봤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mmo개발 경력을 가진 사람들은 남의 소스 위에서 작업했겠지만 난 바닥부터 다 만들어봤다. 그래서 얼마나 걸리는지는 아주 잘 안다.
그리고 당신네 팀이 그래픽엔진을 구입했든, 서버네트워크 라이브러리를 구입했든 별로 중요치 않다. 그 프로젝트가 mmo가 된다면 그 어마무시한 코드 덩어리들-엔진과 네트워크 라이브러리-도 전체에 비해선 비교적 작은 부품들일 뿐이다.  앞으로 게임이 제대로 작동하게 되려면 또한 억만광년의 세월이 걸린다.

여기서 질문. 그럼 그 동안 한국 게임 업계에 넘쳐나던 수많은 온라인 게임들은 다 어떻게 나왔을까?
답은 간단하다. 실제로는 몇 개의 기반 소스에서 파생되어나온 물건들이다.

예를 들어 능력자 A개발자가 C회사에서 작성한 온라인 게임 플랫폼의 코드는 C회사에서 또 다른 몇 개의 온라인게임에서 사용한다. 그리고 C회사가 망한 다음에는 2-3개의 회사로 분화되어 그 회사에서 또 사용한다. A개발자는? 뭐 법적으론 깔끔하다고 볼수 없으나 관행적으로…A개발자가 이직한 다른 회사, 혹은 직접 차린 회사에서 또 해당 소스를 사용한다. 그런 이유로 사람을 스카웃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리고 A개발자가 차렸거나 일했던 회사에서 또 몇개의 회사로 분화하면서 그렇게 뿌리깊은(?) 소스 코드들은 온누리로 퍼지게 되는 것이다…

농담같이 들리겠지만 이 바닥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면 대개 수긍할 것이다. 많은 게임들이 그렇게 만들어졌고 서비스 되었다. 알만한 사람들끼리 모이면 한국의 대부분의 온라인 게임은 실질적으로 몇 인간의 손에서 나왔다고들  얘기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영자는 물론 개발자들도 온라인 게임 만드는게 쉬운줄 알게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다수의 사용자가 서버에 로그인해서 채팅하고 상대방 뛰는거 보이고 때리면 판정 뜨는데까지 어마무시한 세월의 히스토리가 있다는걸 모른다.

여기에 딜레마가 있다.
바닥을 만드느라 2년 정도 시간을 보내고 나면 ‘경영자-투자자-좇문가 유져’ (망할)3대장들의 까임을 견디지 못하고 프로젝트가 날아가기 쉽상이다.(위에 언급했지만 엔진을 사 써도 이 시간이 아주 크게 줄지는 않는다. 그래도 꽤 걸린다)
그래서 ‘경영자-투자자-좇문가 유져’ (망할)3대장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그럴싸한 컷씬을 만들게 되는데 그런다고 2년 이상 버티기도 힘들거니와 눈속임 하느라 제대로 개발을 못한다.
음…아니 경험상 보면 버티는데 능숙한 리더들은 버티기는 잘 하더라. 2년이고 3년이고. 문제는 그래가지고는 게임이 안나온다.

R모사이트라든가에 그럴싸한 컷이 공개되고 나면’우와~ 이 게임 나오면 바로 산다! 혹은 바로 가입!’이라고 유져들이 아우성을 친다. 근데 애니메이션 컷같은거 보여주는 게임들은 대개 출시 아예 안된다. 그 영상을 왜 공개했는지 이유를 생각해봐.
나올 게임은 아주 일반적인 플레이 영상을 공개하지.

이런 현실에 대해서 10년도 전부터 얘길 해왔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모른다.
경영자나 투자자나 유져들이나 다 보고 싶은것만 본다.

내 빠심을 자극한, 내가 지지하는 프로젝트가 그럴리 없어!

기다려봐. 10년이고 20년이고. 언젠간…안나와.


나오기만 하면 살건데 이 게임 왜 안나와?”에 대한 답글 3개

  1. “게임을 만든다는 것은 그 뒤의 보이지 않는 작업이 우주에 깔린 암흑물질만큼이나 많다.” 표현 정말 재밌으십니다!

    다이렉트x 9 처음 배웠을때 정육각형 하나 띄울때도 정말 쉽지않았었기에… 버텍스 정점찍는 순서같은게 정말 헷갈렸던게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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