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팀장님 그 옛날 우리 팀장님.

내가 게임회사에 입사한 것은 99년 7월이었고 첫 프로젝트는 코룸 외전이었다.

요새 사람들이 보면 무척이나 생소하게 여길 패키지 RPG게임이었다.

그 당시 우리 프로그램 팀장 K님은 프로그램 팀장이기도 하고 실질적인 프로젝트 리더이기도 했다.

무척 죄송하게도 그 당시에는 K팀장님을 과소평가했던거 같다.

그런데 11년이 지난 지금 과거를 되돌아보면 그 분이 참 대단한 분이었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 기술적인것보다도 프로젝트 리더로서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했다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 땐 나도 철이 없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신참 개발자들 대부분은 거의 똑같은 코스를 거친다. 거의 예외없이 철부지다. 시간이 웬만큼 흐를 때까진 다 그렇다. 능력이 있건 머리가 좋건 학벌이 좋던 철딱서니 없는건 다 똑같다.

20명 조금 넘는 우리 개발실은 아침마다 전체회의를 하곤 했다.

프로젝트 막판으로 갈 수록 회의가 잦았는데 주로 현재 개발중인 게임에 대한 평가와 어떻게 해야 더 좋아지겠는가 그런 회의였다.

철 없는…이 신참 프로그래머(나)는 게임의 단점에 대해서 구구절절 읊어댔다. 다른 게임과 비교를 하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아 근데 나만 그런건 아니었다. 개발팀원의 1/3정도 , 내가 생각하기에 나만큼 혈기가 끓어넘치던 멤버들은 연신 게임에 대해서 비난을 퍼부어댔다. ‘그러니까 이렇게 해야 더 재밌다니까요~’

어느 날인가…우리 K팀장님이 버럭 화를 냈다. 소리를 꽥 질렀다.

지금 이럴때냐고…벌써 얼마나 딜레이 됐는지 아느냐… 이런 저런 요구사항 다 들어주다보니 거의 게임을 새로 만든것과 같다. 이래가지고 언제 내보낼래…

아 그렇게 열내는거 처음 봤다.

살짝 쫄았지만 그래도 재밌게 해보자고 하는 말인데 넘 화내는거 아닌가…라고 내심 생각했었다.

그러고 얼마 후에 또 회의실에서 K팀장님이 고함소리가 들렸다. 거짓말 안보태고 1시간이나 지속되었던것 같다.

아마 상대는 개발실장님이었던것 같고 후일 들은 얘기로는 사장님한테도 마구 퍼부어댔다고 했다.

요는….’지금 게임 새로 만들거요?  여기서 끊고 출시해야될거 아니오?’ 였다.

하여간 미친듯이 화를 냈던 K팀장님 덕에 어찌했건 마무리를 지어서 99년 겨울에 게임을 출시했다.

좋은 흥행성적을 거두진 못했다. 패키지 시장이 죽어가던 마지막 끝물이었고, 또 창세기전3과 같이 출시된게 좋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게임에도 버그가 많았다. 그래픽도 타겟층이 좀 애매했고…

그럼 그 때 질질 끌었으면 흥행에 성공했겠는가…하면 그 당시 개발팀 멤버들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NO’라고 말하리라 확신한다.

그렇다. 오히려 더 빨리 출시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 회의때 나온 얘기 다 수렴하고 더 잘 만들어보겠다고 시간 끌었으면 그나마 시장에도 못내놨을거다. 패키지 시장이 더 죽은 뒤에 내보내서 손해가 더 컸을수도 있다.

그래도 K팀장님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쇼를 했으니 그 정도로 피해를 최소화하고 출시할 수 있었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신참 프로그래머였던 내가 크게 겁먹지 않고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팀장이 어떻게든 해주겠지’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프로젝트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소리를 질러서라도 끊을때 끊은 점. 프로젝트를 완료할 때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킨 점.

그것만으로도 굉장히 훌륭한 리더였다. 라고 지금 생각한다.

지금 나는 K팀장님의 위치에 와 있다.

과거 나와 같은 모습의 신참 팀원들이 투정을 해댄다. 혈압이 올라서 뒷목을 붙잡는다. 설명해도 소용없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그들은 절대 이해 못한다.

더 재밌게 해야 돈된다는 윗사람들의 요구에 또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이 분들은 개발팀 현실이나 프로젝트 초기의 목표에 대해선 금방 잊어버린다.

오..K팀장님. 님은 정말 훌륭했어요. 존경합니다.

요새 같이 매일 머리를 쥐어뜯을땐 당신 생각이 참 많이 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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