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Show Stopper

예전 홈페이지 http://yuchi.net 에 2005년 2월 5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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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랄까..라고 하기엔 아마 책에 대한 내용보단 내 개인적인 잡설이 길겠지.

Show Stopper라고 표기할거라 생각하는데 사실 원어판 책은 본적이 없다.
국내에선 백상 미디어에서 ‘빌게이츠의 야망을 가진 남자들’ 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얼마 안팔리고 절판되었다.

쇼를 중단시키는것..이란 의미인데 즉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돌지 못하게 하는것, 버그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소프트웨어중에서도 특히 OS분야가 버그잡는게 50%이상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일이다보니 그런 제목을 붙이지 않았나싶다.

내용이 무엇인고 하니 Microsoft의 Windows NT OS개발 비화를 엮어놓은 것이다.

NT(New Technology는  출시될 때 Windows NT로서, 그리고 지금은 Windows 2000, Windows 2003 Server,Windows XP로 진화해있는 바로 그 OS이다.

언급한 OS들은  Windows 95/98/ME와는 껍데기만 비슷할 뿐 태생부터 다른 전혀 다른 OS이다. 바로 20년이나 전에 개발하기 시작했던 그 NT커널을 사용한 OS들이다.

프로그래머들이라면 이 책의 내용에 꽤 흥미를 가질만하다.

내게는 흥미 이상의 계기가 되었던 책이다.

그러니까 몇년전 97년? 98년? 대학교 1,2학년 시절 얘기다.

허접한 실력으로나마 게임 그래픽을 한다고 끄적대던 그 시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래픽을 때려치느냐…계속 하느냐…
초딩 6학년때 이후로 난 머리 나빠 프로그래밍은 못한다고 스스로 단정짓고 있었다. 쉽게 말해 포기했고 내 근성 가지고 할 수 있는건 그래픽뿐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시절이었다. 꼭 진로때문이 아니더라도 군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그래픽 디자이너나 프로그래머를 해서 병특을 잡아야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책 대여점에 가는 일은 3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할 정도다. 하필 그 무렵에 그렇게 어려운 걸음 하여 책 대여점에서 이 책을 찾은건 결국 신께서 내게 이 길을 열어주심이었을까.

빌게이츠 어쩌고 하는 번역판 제목을 보고 빌렸지만 곧 내용을 보고 완전히 빠져들게 되었다.

데이빗 커틀러…한번도 들어보지 못한 이름이다. 여느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컴퓨터 업계의 유명인사라봐야 빌게이츠, 스티브 잡스 정도.

사업으로 돈번 그들의 얘기가 아니다. 데이빗 커틀러라는 OS계의 최고 프로그래머와 그 개발에 관련된 얘기들. 그 내용이었다. 정말이지 푹 빠져버렸다.
남들 보기에 뽀대나는 화려한 생활을 하는 이들에겐 꽤나 우습게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NT를 개발하면서 싸우고 고민하는 모습들이 너무 멋져보였다. 운동 좋아하고 한성깔 하는, 더우기 천재가 아닌 근성과 경험의 프로그래머 데이빗 커틀러는 내가 지향하던, 또 한편 나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후딱 이 책을 다 읽어버렸고 다른 생각은 할 이유가 없었다. 게임 그래픽을 하고 싶었던 것은 문제가 아니다. 난 프로그래머가 되어야했다. 책 속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다.

혼자 프로그램 짜고 점 찍고 해서 난생 처음 만들었던 ‘퍼즐다마’ 게임을 만든 것이 이 책을 읽기 전이었는지 다음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확실한 것은 감히 프로그래머로 현업에서 뛸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는 것.

이놈의 책 때문이었을까. 이후엔 프로그래머로서 나름대로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또한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초딩때 이후로 때려친 프로그래밍을 97년 10월에 다시 시작했다.
C/C++, DirectX, Win32API를 독학으로 학습했는데 무조건 게임 하나 만드는게 목표였다.  몇개월 붙잡은 끝에 98년 3월에 첫 게임을 하이텔 게제동에 업로드 할 수 있었다.  

잠깐 게제동에 관한 여담을 풀어보자면….
94년도에 게제동에 처음 가입했고 그땐 그래픽 디자이너로서였다. 아마추어 팀의 캐릭터 그래픽이었고 팀 내에선 그럭저럭 점 잘찍는다고 칭찬도 받았었다. 프로그래머였던 팀장이 잠적해버려서 팀이 깨져버리고 게제동엔 발을 끊었다가 97년 가을에 프로그래밍을 다시 시작하면서 ‘프로그래머’로서 다시 발을 들였다.

하던 얘기 계속 이어서…
98년 가을엔 간단한 3D데모를 짜서 모 회사의 프로그래머 전형에 합격했다. 일이 좀 꼬여서 첫 출근도 하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지만 상당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그 다음 데모는 직접 모델링한(그래서 허접한) 바니걸 캐릭터에 라이트웨이브에서 추출한 애니메이션 데이타를 적용시켰다.
이걸 98년 12월에 첫 직장이 된 하이콤엔터테인먼트의 입사전형에 제출했고 면접 후 이듬해인 99년에 합격통보를 받았다.

중학교때부터 눈물을 흘려가며 마우스로 점찍어 그림을 그렸지만 좀체로 인정받을 수 없었는데…놀랍게도 프로그래밍을 시작해서 얼마 되지 않아 현업에서 뛸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신께서 열어주신 길이었다. 그리고 그 스타트는 이 글의 제목인 ‘쇼스토퍼’란 책을 집어들게 된 그 순간이었다.

책 속의 데이빗 커틀러란 인물, 내가 볼적에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결코 머리가 좋아서 거물 프로그래머가 된 것이 아니라 이거다.

우리나라 프로그래머들이 ‘이젠 머리가 굳어서..’라고 하며 프로그래밍 관두고 관리자 하려고 바둥거리던 그 나이에 그는 프로그래밍을 처음 시작했다. 근성이 있었고 그는 미친듯이 프로그래밍을 좋아했다.
그렇게 노력과, 근성, 무엇보다 열정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머이기에  다른 어떤 프로그래머보다 그를 동경한다.
나 역시 머리가 좋아서 이 짓을 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언젠가 window 2000의 소스를 볼 기회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250MB에 달하는 소스 파일들을 검색해서 데이빗 커틀러라는 이름을 찾아봤다.
놀랍게도 그 안에는 그의 이름이 적힌 소스코드들이 상당부분 존재했다. 커널소스의 상당 부분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나를 비롯한 커틀러의 추종자들, 우리 ‘낭만을 아는 프로그래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우리는 말로만 듣던 전설의 마법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냈던 것이다!!!

주변에서도 프로그래밍을 지겨워하는 프로그래머들을 많이 보았다. 노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난 이 직업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엄밀히 따져 난 게임 개발자가 아니다. 프로그래머다. 그렇게 불리고 싶다. 프로그래머인데 게임을 주로 만드는 사람이다. 여지껏 이 일을 좋아서 해왔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그래픽을 포기할 당시엔 내가 그 분야에서 상위권 안에는 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은 다르다. 상위권에 들던 안들던 상관이 없다.

월급 밀려 회사를 옮기고 싶었던 생각은 했어도 이 일을 그만두려고 한적은 없다.(푸념은 푸념일뿐 결코 진심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가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억대 연봉을 줘도 프로그래밍을 계속 할 수 없다면 관심이 없다.

난 그래도 굉장히 행복하다.
왜냐하면 과거에 꿈꾸던 감동을 하루에 몇번이라도 느낄 수 있으니까.

오늘 짠 검색 코드가 제대로 돌아갈때의 감동은 그때 책을 읽으며 느꼈던 그 감동, 같은 것이다.

가끔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내 모습이 그냥 과장이 아님을 내 동료들은 아는지 모르는지…내가 짠 코드가 멀쩡하게 돌아갈 때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이렇게 장황하게 써놔도 날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겠지. 프로그래머라 해도 말이다.

간만에 그 놈의 책을 다시 꺼내서 읽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났다.

뭐 그러니까 결론은 저 책 재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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